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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은 좋은 감사를 못 한다.
  • 등록 2024-06-24 10:47:22
  • 수정 2024-07-02 11: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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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엣지 = 유종남 논설위원] ‘나쁜 놈은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 

어떤 놈이 나쁜 놈일까. 

나는 딱 한 가지 부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나뿐인 부류다. 개인적으로는 나뿐인 놈이 음운학적인 변천 과정을 거쳐 나쁜 놈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남이야 죽든 말든 자기만 잘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들은 무조건 나쁜 놈에 속한다. 글은 쓰는 자의 인격을 그대로 반영한다. 사물의 속성을 파악하는 일은 사물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이며 사물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은 사물과의 사랑을 시도하는 일이다.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 나쁜 놈들에게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에 나오는 말이다.1) 

 

이를 감사에 적용해본다. ‘나쁜 놈은 좋은 감사를 못 한다. 아니 어떤 감사든 해서는 아니된다. 나뿐인 놈이 나쁜 놈이다. 남이야 어떠하든 혼자 사건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들은 무조건 나쁜 놈에 속한다. 감사는 하는 자의 인격과 깊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시스템의 속성을 파악하는 일은 시스템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이며 시스템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은 시스템과의 사랑을 시도하는 일이다.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 나쁜 놈들에게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감사는 글쓰기보다 더 어렵다. 글쓰기는 사람과의 소통이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지만, 감사는 반드시 사람을 통해야 한다. 사건이나 시스템과의 소통은 사람, 즉 관련자들과의 소통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소통은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소위 ‘나쁜 사람’, ‘나뿐인 사람’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어렵다. 

 

나는 33년간 직장을 다녔다.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업무에 투입하는 감사관을 많이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 감사관 한 분과 같이 근무한 적이 있다. 그는 나보다 5, 6년 정도 먼저 들어온 선배였다. 성격이 모나지는 않았다. 큰 키에 호리호리했다.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 평일은 물론이고 토요일, 일요일에도 밤늦게까지 사무실을 지켰다. 퇴근 시간이 지하철 막차에 맞추어져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마 집에는 밤 12시가 넘어야 들어갔을 것이다. 출근은 숨을 헐떡이며 9시에 간신히 맞추거나 몇 분 늦곤 했다. 경기도 정기감사에 갔을 때 일이다. 감사장은 대강당에 차려졌다. 오후 7시가 넘었는데도 이분은 꼼짝하지 않은 채 서류를 검토했다. 나는 예의상 그 감사관과 같이하며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넓은 감사장에 우리 둘만 있었다. 다른 감사관들과 저녁도 같이 해야 하고 수감기관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조심스럽게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데 퇴근하자니 무슨 소리냐?’ 너무나도 상투적인 말이 신념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서 일순 나는 당황했다. 나는 조용히 감사장을 빠져나왔다. 그 감사관은 밤 9시가 넘어서야 나온 듯하다. 특별한 현안이 없는데 6시를 넘겨 태연히 감사장을 지키는 감사관은 그전에도 그후에도 보지 못했다. 

 

그 감사관은 감사장이나 사무실에서 감사와 관련하여 동료 감사관과 말을 나누지 않았다. 수감자들과 소통하거나 접촉하는 모습도 보기 어려웠다. 혼자 서류를 보고 나름의 분석과 정리에 빠져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과장도 그 감사관을 상관하지 않았다. 고참인데다가 엄청 열심히 하면서 주관이 강했기 때문이다. 혼자 밤낮없이 감사보고서를 썼다. 마감 시한을 넘겨 2, 3건 정도를 냈다. 한 건을 30쪽 가까이 썼다. 해당 감사 주관자나 과장이 보기에 사안이 사소하거나 사건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그 감사관이 쏟은 그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의 열정과 신념을 볼 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사건은 국장 결재 후 거치는 심의실 검토단계에서 불문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그분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매일 오전 9시부터 밤 11시경까지 회사에 머무르며 개인활동과 가정생활을 다 희생하고 일에 몰두했는데 그 결과는 하지 않느니만 못했다. 그 감사관이 생산한 감사결과를 불문하지 못해 다들 난감해했다. 그는 너무나도 진지하고 너무나도 열심이었다. 그리고 본인 나름 너무나도 옳았다. 문제는 아무하고도 소통하지 않는 점이었다. 너무나도 옳기에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다. 

 

물어보고 또 물어보자. 배우고 인정하고 칭찬하자. 실수하기에 인간이다. 신이 되려고 하지 말자. 감사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1) 이외수, 「글쓰기의 공중부양」 48~49쪽에서 발췌. 동방미디어, 2006



감사·내부통제 전문지 BLACK EDGE




유종남 논설위원

前 감사원 과장

前 한국광물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

現 MG새마을금고중앙회 감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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