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가 경마의 공정성을 좌우하는 도핑검사 표준물질과 작업표준용액을 부실하게 관리해 검사 신뢰성을 스스로 훼손해온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확인됐다. 마사회는 15년 이상 장기 보관한 표준물질을 대거 방치한 데다, 유효기간이 지난 마약류 표준물질도 폐기하지 않고 보관했고, 마약류 성분이 포함된 작업표준용액을 만들면서도 제조기록을 누락하는 등 기본 관리체계가 허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마사회장에게 전면적인 개선을 통보했다.

<사진: 한국마사회, 출처: 한국마사회 홈페이지>
[블랙엣지뉴스=곽대훈 기자] 마사회는 「경마시행규정」에 따라 경주 전·후 경주마와 기수를 대상으로 금지약물을 검사한다. 검사 결과 금지약물이 검출되면 경주마 출전 제외, 상벌위원회 부의에 따른 제재, 면허정지·과태금, 또는 경주 후 검출 시 상금 제한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도핑검사는 경마 공정성과 직결되는 핵심 절차다. 이 검사는 표준물질을 희석·혼합해 만든 작업표준용액을 장비에 투입해 시료와 비교 판독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며, 결국 표준물질과 작업표준용액 관리가 부실하면 검사 결과의 정확성과 신뢰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마사회는 2025년 6월 기준 일반 표준물질 939종, 마약류 표준물질 70종 등 총 1,009종을 보관·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감사원 점검 결과, 이 가운데 2010년 이전 구입해 15년 이상 장기 보유한 표준물질이 519종에 달했다. 이는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 자체감사 당시보다 4배 이상 늘어난 규모로, 상당수는 품질보증서가 없거나 보증기간이 경과해 성분 유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더 심각한 대목은 마사회가 이미 2017년 농식품부 감사에서 “운영 및 관리 미흡” 처분요구를 받고, 같은 해 10월 “표준물질 수급 및 관리 개선 계획”을 세우며 ‘15년 이상 장기보유 성분 128종을 3년간 구입·교체하겠다’고 약속해놓고도, 2025년 6월 감사 시점까지 128종 중 고작 6종만 교체했다는 점이다. 나머지 122종은 예산 미확보 등을 이유로 교체하지 않은 채 계속 보유·사용 가능 상태로 남겨둔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결과적으로 마사회가 스스로 세운 계획을 사실상 방치하면서 장기보유 표준물질이 누적·증가하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봤다.
“유효기간 지난 마약류 표준물질”도 폐기 안 해…사용 이력 없는 졸피뎀까지 보관
마약류 표준물질 관리도 허술했다. 마사회가 보관 중인 마약류 표준물질 70종 가운데 데소모르핀(Desomorphine), 테바인(Thebaine) 등 도핑검사 목록에 포함된 성분을 포함해 총 3종이 유효기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보관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졸피뎀(Zolpidem)은 도핑검사 목록에도 포함되지 않은 성분임에도 “검사대상 약물 확대”를 이유로 구입해놓고 사용 이력 없이 유효기간이 지난 뒤에도 폐기하지 않은 채 보관한 것으로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은 마약류 표준물질의 경우 유효기간 경과 시 사용해서는 안 되며, 폐기 또한 관련 법령에 따라 식약처 입회 등 절차를 준수해야 하는데도, 마사회가 이를 적시에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마약류 섞인 작업표준용액 만들고도 ‘제조기록 없음’…검사 기반문서부터 무너졌다
감사원은 마사회가 표준물질을 희석해 작업표준용액을 제조할 때 제조기록 대장을 작성하도록 한 내부지침을 두고 있음에도, 총 5개의 작업표준용액에 대해 제조기록이 누락된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2023년 7월 5일 서울 도핑검사소가 부산·제주에 분양한 KRA-T-01(산성약물) 관련 작업표준용액 등에서 기록이 없었고, 날짜가 특정되지 않는 KRA-T-26(다성분 동시분석) 용액은 기존 용액에 추가 8종을 혼합했는데도 제조기록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작업표준용액에 마약류 성분이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다. 감사원은 KRA-T-02 작업표준용액에는 마약류 4종, KRA-T-26 작업표준용액에는 마약류 55종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적시했다. 마약류가 포함된 표준용액의 제조·사용 이력은 더 엄격히 추적·관리돼야 하는데, 기본 문서부터 누락된 셈이다.
“632종 혼합 용액” 검증해보니 135종 ‘미검출’…그런데 객관적 검증방법도 없었다
검사 신뢰성을 뒤흔드는 대목은 유효성 검증의 부재다. 마사회는 KRA-T-26 검사에 표준물질 632종을 혼합한 작업표준용액을 사용하며, 이 용액은 장비 성능점검과 검사 기준값 비교의 핵심이다. 그런데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마사회가 2025년 4월 25일 해당 용액으로 점검한 결과, 632종 중 497종만 결과값이 표출됐고 135종은 검출되지 않았다. 마사회는 “약물 간 간섭”이나 “성분 불안정성으로 분해돼 미검출”이라는 취지의 의견을 냈지만, 감사원은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방법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마사회가 사용하는 도핑검사 방법은 총 7종인데, 내부지침에는 KRA-T-01의 작업표준용액 유효기간 검증방법만 기재돼 있을 뿐, 나머지 6종에 대한 유효기간·유효성 검증방법은 규정돼 있지 않아 작업표준용액의 유효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감사원은 판단했다.
감사원은 한국마사회장에게 ▲15년 이상 장기 보관 중이거나 유효기간이 지난 표준물질을 교체하고 ▲작업표준용액 제조기록이 누락되지 않도록 관리하며 ▲성분 간 간섭·분해 등으로 검출되지 않는 경우까지 포함한 유효성 검증방법을 마련하는 등, 현재 사용 중인 모든 작업표준용액에 대한 유효성 검증방안을 구축하라고 통보했다.
마사회는 감사결과를 수용하면서 노후 표준물질을 교체하고, 유효성 검증절차를 확립하며, 제조기록 누락 방지와 함께 물질 간 간섭·분해로 미검출되는 성분 목록을 작성해 검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내부통제 전문지 BLACK EDGE / 곽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