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빠르게 확대되는 가운데, 무상원조 핵심 시행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이하 협력단)의 사업 추진이 지연되고 연계사업도 계획대로 이행되지 않는 등 추진체계의 구조적 문제가 확인됐다는 감사 결과가 나왔다. 감사에서는 사업 지연이 협력대상국의 불만을 유발하고 사업 효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획·심의 단계의 내실화와 사전절차의 조기 추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블랙엣지뉴스=곽대훈 기자] 감사 결과에 따르면 협력단 종료사업 24개를 분석한 결과, 상당수 사업이 당초 계획보다 1~6년가량 기간이 늘어났고, 일부 사업은 총사업비도 증액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사업이 늦어지면서 협력대상국 현지에서 불만이 제기되거나, 훈련·연수 등 사업 구성요소 간 시너지가 약화되고, 사업 지연 중 협력대상국이 유사 시스템을 자체 구축해 사업 효과가 축소되는 사례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실제 네팔 지진 피해 지역 보건소 재건 사업의 경우, 협력대상국이 긴급성을 고려해 조립식(Pre-fab) 보건소를 조속히 완공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통관 지연, 시공사 변경, 예산 증액 등으로 일정이 늦어져 지역 주민들이 강한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즈베키스탄 직업훈련원 사업에서는 시설 준공이 지연되는 동안 교사 연수가 예정대로 진행돼, 실제 근무까지 장기간 공백이 발생하면서 인력 이탈 가능성이 커졌고, 볼리비아 병원 지원 사업은 부지 협의 지연 등으로 착수가 늦어져 당초 연계하려던 국제기구 사업과의 협업 효과를 살리지 못한 것으로 감사원은 판단했다.
감사원은 사업 지연 요인을 ‘기획·심의 단계’와 ‘시행 단계’, ‘내부 요인’과 ‘외부 요인’으로 구분해 분석했다. 이 가운데 사업기획·심의 단계에서의 사업설계 부실,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부족, 사업시행자 선정·입찰 지연 등은 다른 단계의 지연으로도 이어지는 파급효과가 크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지 여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설계가 시행 단계에서 기자재·인력 수급 지연 등으로 연결되는 사례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진행 중인 신규사업 80개를 점검한 결과, 기획 단계의 구조적 지연은 현재도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비조사 착수 이후 기획조사 착수까지 평균 448일이 소요되는 등 준비 단계에서 시간이 과도하게 걸렸고, 예비조사가 연말·연초에 집중되면서 전문인력 확보가 어려워 공모 원칙에도 불구하고 비공모 선발이 늘어나는 문제도 확인됐다. 예비조사 참여 전문가 429명 중 142명은 비공모 방식으로 선발된 것으로 집계됐다.
감사원은 이 같은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사업요청서 검토위원회’가 규정상 상시 개최로 되어 있음에도 실제로는 N-2년 하반기에 집중 운영되는 경직된 관행을 지목했다. 검토가 늦어지면서 예비·기획조사에 필요한 전문인력 수급도 한 시기에 몰려 조사 품질 저하와 일정 순연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또한 협력단이 예산 심의 과정에서 신규사업이 취소될 가능성을 우려해 N-1년 단계에서 협력대상국과의 구체 협의 및 협의의사록(R/D) 체결에 소극적이었던 점도 지연을 키운 요인으로 지적됐다. 감사에 따르면 2022~2024년 신규사업의 경우 국개위 의결 시행계획에 포함된 171개 사업 중 170개(99.4%)가 정부안과 국회 의결 예산에 변동 없이 반영된 것으로 나타나, 예산 확정 전 협의 자체를 미루는 관행이 과도하다는 취지다. 감사원은 협력대상국이 사업 조기 추진을 명시적으로 희망하는 경우 ‘조건부 협의의사록’ 체결 등 제도 활용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계사업 관리 부실도 문제로 지적됐다. 협력단 연계사업 29개를 점검한 결과 19개(65.5%)가 시행계획과 달리 실제 연계가 이뤄지지 않았고, 애초 연계가 어려운 사업이 연계사업으로 선정되거나 연계 추진에 대한 지도·감독이 소홀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에 외교부에는 재외공관 ODA 현지 협의체에 대한 지도·감독을 강화하고, 시행계획안 검토 시 미연계 사유를 확인하도록 조치 요구가 이뤄졌다.
아울러 감사원은 사업착수 연도에 사업수행자(PC/PMC) 선정이 늦어 예산 집행과 성과 달성이 지연되는 구조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진행 중인 80개 사업 가운데 사업착수 연도 내 사업수행자 선정을 완료한 사업은 41개(51.3%)에 그쳤고, 다수 사업이 4분기에야 선정이 완료되는 등 초반 집행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협력단의 해외사무소 조직업적평가 성과지표에 사업수행자 선정 시점을 반영하는 등 평가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감사 지적에 대해 협력단은 가이드라인 확정 시점을 앞당겨 사업요청서 검토위원회의 상시 개최를 추진하고, 형성조사 제도 도입을 병행해 예비조사 시기를 분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조건부 협의의사록 체결 규정의 실무 적용을 확대하고, 사업수행자 선정 시점을 해외사무소 평가에 반영하는 방안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감사원은 협력단 이사장에게 ▲전문인력 수급 여건 개선을 위한 사업요청서 검토위원회 상시 개최 등 신규사업 발굴 제도 개선 ▲협력대상국과의 협의의사록 문안 사전 협의 및 조건부 협의의사록 체결 활성화 ▲해외사무소 성과지표에 사업수행자 선정 시점 반영 등을 통보했다.
감사·내부통제 전문지 BLACK EDGE / 곽대훈 기자